<이교성칼럼>영원한 부활의 종교를 놓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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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마간다통신 댓글 0건 조회 1,969회 작성일 15-04-13 15:56본문
불란서의 불가지론자(Atheist) 탈텔랑이 하루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보려고 왕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때 왕은 그의 제안을 다 들은 뒤에 점잖게 충고했습니다. “그대가 새로운 종교로 성공하려면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보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창설하는 종교를 믿겠노라.
”비록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그 왕의 대답은 솔로몬의 재판 같은 명답이었습니다. 어느 종교에 속했던 간에 그 종교의 교조(敎祖)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살아있다는 증거가 없다면 거기 속한 종교인은 엄밀히 말해서 종교의 신봉자라기보다는 도덕이나 지식, 경제적 유익, 혹은 정치에 관심 두는 추종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불확실한 미래의 사실을 가르치는 불가지론자(Atheist)들도 종교인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사회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일보에서 지난 2015년 4월 6일 보도한 인터넷 뉴스에서는 “이슬람이 세계 최대종교가 될 때”를 가상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중에서 신분의 변화를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특히 미국 사회의 통계를 통해 한국일보 기사는 불안감을 표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흑인계라는 것이고 미국 교도소 재소자 중 80%가 수감 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절대다수가 흑인계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빈곤이, 사회문제가 지하드(필자 주-Jihad,종교적 헌신, 전쟁 포함)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지하드는 이슬람으로서는 종교적 책무이다. 그 이슬람 사회에 만연한 부정의(不正義)에는 무지한 상태에서 미국인들은 종교적 관용만 내세우는 고지식함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하는 소말리아 출신의 망명 여인 히르시 알리의 경고를 싣고 있습니다. 2050년에 기독교인들이 다수였던 나라들이 이슬람교인들에게 숫적으로 뒤지면서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의 숫자가 같아진다는 예상입니다.
조금 지나면 이슬람이 기독교를 제치고 세계최대의 종교가 된다는 것을 예상을 하면서 이 기사를 쓴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회가 그 나라에서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슬람의 부흥이 일어났다고 예측하는 것이니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경고성의 글이라 사료됩니다. 필자는 이런 예상이 말세의 징조로써 가능하다고 보지만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공(ball)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최고 보배덩이인 ‘부활’의 소식을 어떻게 증거하며 변화된 삶을 이웃에게 패스(pass)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정신 차리고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웃사랑을 좀 더 강하게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세계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크게 도우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917년 3월 볼세비키 혁명(Bolshevik Revolution)이 일어나 1991년 까지 87년간 정교회(正敎會)가 대다수였던 러시아가 공산국가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 기독교도 타종교에 밀리고 이슬람에도 뒤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영생(永生)부활(復活)을 믿는 가치관으로 세상의 향락과 유혹을 이겨내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사랑의 실천을 힘쓴다면 우리나라는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 Tagore, 1861∼1941)가 말한 “동방의 등불”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인간을 유혹할 때에는 반드시 영원한 희망을 뭉개고 현실적인 향락과 유익을 통하여 영혼과 육체를 망치게 공격합니다. 우리는 영생구원의 가치를 절대 놓치지 말고 한번 뿐인 인생을 잘 지키고 가꾸며 의미 있게 활용하여야 될 것입니다.“...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린도전서 15장 32-34절)
글쓴이-이교성 목사 명성교회 담임-
”비록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그 왕의 대답은 솔로몬의 재판 같은 명답이었습니다. 어느 종교에 속했던 간에 그 종교의 교조(敎祖)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살아있다는 증거가 없다면 거기 속한 종교인은 엄밀히 말해서 종교의 신봉자라기보다는 도덕이나 지식, 경제적 유익, 혹은 정치에 관심 두는 추종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불확실한 미래의 사실을 가르치는 불가지론자(Atheist)들도 종교인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사회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일보에서 지난 2015년 4월 6일 보도한 인터넷 뉴스에서는 “이슬람이 세계 최대종교가 될 때”를 가상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중에서 신분의 변화를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특히 미국 사회의 통계를 통해 한국일보 기사는 불안감을 표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흑인계라는 것이고 미국 교도소 재소자 중 80%가 수감 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절대다수가 흑인계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빈곤이, 사회문제가 지하드(필자 주-Jihad,종교적 헌신, 전쟁 포함)를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지하드는 이슬람으로서는 종교적 책무이다. 그 이슬람 사회에 만연한 부정의(不正義)에는 무지한 상태에서 미국인들은 종교적 관용만 내세우는 고지식함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하는 소말리아 출신의 망명 여인 히르시 알리의 경고를 싣고 있습니다. 2050년에 기독교인들이 다수였던 나라들이 이슬람교인들에게 숫적으로 뒤지면서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의 숫자가 같아진다는 예상입니다.
조금 지나면 이슬람이 기독교를 제치고 세계최대의 종교가 된다는 것을 예상을 하면서 이 기사를 쓴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회가 그 나라에서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슬람의 부흥이 일어났다고 예측하는 것이니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경고성의 글이라 사료됩니다. 필자는 이런 예상이 말세의 징조로써 가능하다고 보지만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공(ball)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최고 보배덩이인 ‘부활’의 소식을 어떻게 증거하며 변화된 삶을 이웃에게 패스(pass)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정신 차리고 영원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웃사랑을 좀 더 강하게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세계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크게 도우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917년 3월 볼세비키 혁명(Bolshevik Revolution)이 일어나 1991년 까지 87년간 정교회(正敎會)가 대다수였던 러시아가 공산국가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 기독교도 타종교에 밀리고 이슬람에도 뒤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영생(永生)부활(復活)을 믿는 가치관으로 세상의 향락과 유혹을 이겨내고 정의와 평화를 실천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사랑의 실천을 힘쓴다면 우리나라는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R. Tagore, 1861∼1941)가 말한 “동방의 등불”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인간을 유혹할 때에는 반드시 영원한 희망을 뭉개고 현실적인 향락과 유익을 통하여 영혼과 육체를 망치게 공격합니다. 우리는 영생구원의 가치를 절대 놓치지 말고 한번 뿐인 인생을 잘 지키고 가꾸며 의미 있게 활용하여야 될 것입니다.“...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린도전서 15장 32-34절)
글쓴이-이교성 목사 명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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