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폰세는 불라칸의 발리왁에서 1865년 3월 22일 마리아노 폰세와 마리아 콜란테스 델로스 산토스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편찬가, 사회운동가, 저널리스트, 사학자, 사회개혁론자, 과학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초기 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휴고 일리간의 주안 에반젤리스타 사립학교에서 고등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교육을 수료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Colegio doe San Juan de Letran에 입학, 문과 분야에서 학사 자격증을 수여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졸업 후 UST에 입학한 그는 석사과정 학습에 매진했다.
2년 후, 그는 Universidad Central de Madrid에서 의대를 졸업했다.
잠시 그가 스페인에 머물렀을 동안 마리아노 폰세는 라 솔리다리다드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개혁운동에 몸담았다.
그는 또한 프랑스, 홍콩등을 여행하던 중 필리핀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귀날도를 만났고 인도차이나와 샹하이에서 중국의 초대대통령 순 얏센을 만났다.
1898년 7월, 그는 일본황실과 협의를 위해 일본의 요코하마로 여행했다.
이곳에서 마리아노 폰세는 그의 아내인 아키요 우당아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와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두둔 그는 필리핀 입법부 불라칸 지구 대표로 1908년부터 1912년까지 활동했으며 폐결핵으로 1918년 5월 23일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