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기득권을 버려라!
작성일 15-04-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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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1,941회 댓글 2건본문
사람이 셋이 모이면 정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 필요악(必要惡)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정치가 얼마나 필요악이 되어 있는지 누구나 다 느끼는 바입니다. 필요악의 정치로 변질되면 반드시 기득권(旣得權) 세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한국 정치판은 항상 당파(黨派)싸움의 원죄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비난, 비하, 비판하고 정의와 상관이 없는 여론몰이를 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놈이 그 놈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득권 세력이 종교의 교권 속에서도 있다는 것입니다. 파벌정치, 학연정치, 계보정치, 써클정치, 지역정치 등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썩어가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가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교세가 크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장자의 축복도 따지고 보면 기득권적 늬앙스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歷史)속에서 끝없이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득권에 안주하여 상식도 무너뜨리고 법도 무너뜨리고 편법과 불법의 가면을 쓰고 자기합리화의 기득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오랜 세월 속에 존재하면서 진리추구와 인간양심 회복, 도덕과 윤리보다 초월하는 영적 심성으로 성숙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교권의 맛을 들인 자들이 기득권층을 만들어 개혁과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최근들어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테레사는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Anjez Gonxhe Bojaxhiu)인 알바니아계의 로마 가톨릭 수녀였습니다. 1950년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여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와 다른 나라들에서 헌신 하였습니다.
1970년대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하여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가 있었고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데레사"라는 호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난을 하늘의 뜻이라며 왜곡하여 캘커타 민중들의 계급투쟁 전통을 방해했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로마 가톨릭의 신학적인 변화 같은 진보적인 신학(神學)들에 반대하였으며 부자들에게는 인도주의자와 박애주의자라는 찬양을 받았으나, 민중들에게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판을 들었던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가난 하고 병들고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상생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날 교회들이 점점 더 기득권화된 인식을 회개하지 않고 개교회주의에 휩쓸려 공교회성(公敎會性)을 회복하지 않으며 이단들의 밥이 되고 기성교회의 몰락을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권과 기득권적 힘을 가진 자들이 주변의 작고 힘든 교회를 돌아 볼 줄 알고 내가 가진 만큼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냉소가 되고 있는 교권의 탈을 하루 속히 벗어야 합니다.
<고광태목사/ 다스마리냐스 남영한인교회 담임, 한인교회협의회 사무총장>
그런데 이런 기득권 세력이 종교의 교권 속에서도 있다는 것입니다. 파벌정치, 학연정치, 계보정치, 써클정치, 지역정치 등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썩어가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가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교세가 크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장자의 축복도 따지고 보면 기득권적 늬앙스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歷史)속에서 끝없이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득권에 안주하여 상식도 무너뜨리고 법도 무너뜨리고 편법과 불법의 가면을 쓰고 자기합리화의 기득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오랜 세월 속에 존재하면서 진리추구와 인간양심 회복, 도덕과 윤리보다 초월하는 영적 심성으로 성숙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교권의 맛을 들인 자들이 기득권층을 만들어 개혁과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최근들어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테레사는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Anjez Gonxhe Bojaxhiu)인 알바니아계의 로마 가톨릭 수녀였습니다. 1950년 인도 콜카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여 이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와 다른 나라들에서 헌신 하였습니다.
1970년대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하여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가 있었고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데레사"라는 호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난을 하늘의 뜻이라며 왜곡하여 캘커타 민중들의 계급투쟁 전통을 방해했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로마 가톨릭의 신학적인 변화 같은 진보적인 신학(神學)들에 반대하였으며 부자들에게는 인도주의자와 박애주의자라는 찬양을 받았으나, 민중들에게는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판을 들었던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가난 하고 병들고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상생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날 교회들이 점점 더 기득권화된 인식을 회개하지 않고 개교회주의에 휩쓸려 공교회성(公敎會性)을 회복하지 않으며 이단들의 밥이 되고 기성교회의 몰락을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교권과 기득권적 힘을 가진 자들이 주변의 작고 힘든 교회를 돌아 볼 줄 알고 내가 가진 만큼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냉소가 되고 있는 교권의 탈을 하루 속히 벗어야 합니다.
<고광태목사/ 다스마리냐스 남영한인교회 담임, 한인교회협의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