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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어머니의 잣대

작성일 14-12-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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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간다통신 조회 2,32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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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되면서 피난갔던 사람들이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전쟁으로 모두가 파괴된 도시에는 서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활수단이 별로 없었다. 서민들은 자기 집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길거리로 들고 나와 물건들을 싼값에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자기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해 입동이지나 겨울이 닥쳐오자 어머니는 식구들의 이불 호청을 바꾸기 위해 그동안 품안에 꼬기꼬기 접어 두웠던 쌈짓돈을 갖고 길거리로 광목을 사러 가셨다.
광목장수는 어머니가 흥정하는 값에는 팔 수 없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몇번이고 사정을 하여 광목 9마(1마-3야드)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장농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나무로 된 막대기 자를 꺼내어 길거리에서 사온 광목을 재어보니 광목의 길이는 8마 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사온 광목을 다시 보자기에 싸서 길거리의 광목장수를 찾아가셨다. 광목장수는 모든 것을 눈치채고 아무 말없이 어머니의 보자기를 받아 자신의 자로 광목을 재어 어머니에게 보여주니 광목은 분명히 9마였다.

어머니는 이상히 여겨 어머니의 자로 재어보니 광목은 분명 8마인 것이다. 문제는 어머니의 잣대와 광목 장수의 잣대의 길이가 서로 다른 것이었다.
그때 다른 손님이 찾아와서 광목을 사갈 때 광목장수는 그 손님에게는 주문한 치수외에 덤으로 반마쯤 넉넉하게 더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하여 "아주머니는 광목값을 너무나 깎으셨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라의 형편이 안정이 되면 잣대의 길이는 정부가 표준화 시킬 수가 있으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으로도 표준화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60이 넘게 되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뒤돌아 생각하니 나는 모든 것을 나의 잣대로만 재어가며 살아온 것이다.

심지어 내 아내도 내 자식들도 모두가 내 생각에 맞추어 살아가기를 원했으니 내가 살아온 생활은 평화보다 불화가 더욱 많은 부끄러운 삶이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 비교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잣대에 맞추어 주기를 강요도 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잘못된 편견과 이기심은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평화를 깨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어머니의 잣대를 생각하며 저물어가는 한해를 뒤돌아보고 내가 먼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나에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편집위원 장익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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